헤퍼와 한국

 

6·25전쟁의 상흔, 그리고 헤퍼와 한국의 첫 만남

6·25전쟁 때 한국과 첫 인연을 맺은 헤퍼는 그 후 24년간 한국 농가와 농축산업 분야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자립을 위해 묵묵히 함께 했습니다.
한국의 축산 기반이 어느 정도 회복됐다고 판단된 1976년, 헤퍼는 조용히 한국에서 철수했습니다.

헤퍼와 한국

6·25전쟁의 상흔, 그리고 헤퍼와
한국의 첫 만남

6·25전쟁 때 한국과 첫 인연을 맺은 헤퍼는 그 후 24년간 한국 농가와 농축산업 분야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자립을 위해 묵묵히 함께 했습니다.한국의 축산 기반이 어느 정도 회복됐다고 판단된 1976년, 헤퍼는 조용히 한국에서 철수했습니다.

노아의 방주 기적

1950년, 6·25전쟁으로 한반도는 폐허가 됐고, 수백만 명의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사람 뿐만 아니라 가축도 씨가 마를 지경이었으며, 사람들은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1951년, 헤퍼 프로젝트 인터내셔널 (Heifer Project International)은 한국을 방문하여 상황의 심각성을 확인하고, 1950년 12월 유엔총회의 결의에 의해 창설된 국제연합 한국재건단과 함께 한국 지원을 결정하였습니다. 1952년, ‘산란계용 종란 보내기 (Hatching Eggs for Korea)’ 사업을 통해 21만 6천 개의 종란이 미군 수송기 편으로 한국에 도착해 전국의 부화장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염소, 돼지, 닭, 토끼, 벌통 등의 가축도 전쟁으로 굷주린 사람들과 고아들을 돕기 위해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축산업 발전 기반 마련

1952년부터 1976년까지 총 44회에 걸쳐 가축 3,200여 마리가 미군 수송선 편으로 한국에 도착, 전국 17개 지역에 전달되었는데, 여기에는 60년대 초에 처음 들어온 젖소 897마리, 황소 58마리도 포함되었습니다. 가축은 부산 애아원과 이사벨 고아원, 마산 애리원, 울릉도 병원 등으로 보내져 굶주린 고아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하였고, 축산 농장과 연세대학교에도 전달되어 국내 목축산업 발전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 1952-1954년의 기간 동안 헤퍼인터내셔널에서 200마리 이상의 염소를 한국에 지원
특히, 젖소는 한국전쟁 고아들의 소중한 우유공급원이 됨 >